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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GPT-5 시대, AI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by 입자 2025. 8. 12.

'생각하는 AI'를 표방한 GPT-5가 드디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 모델을 압도하는 성능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제는 정말 인간과 같은 박사급 전문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라는 말도 나온다. 핵폭탄급 변화가 세상을 뒤엎을 거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하지만 한발짝 물러서서 보면, 이번에도 혁명보다는 가속에 가깝다. AI는 여전히 우리가 방향을 제시하면 그쪽으로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주는, 아주 유능한 '엔진'이다. 그리고 이 엔진은 앞으로 더욱 싸고, 더 정확해질 것이다.

오히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AI의 본질적인 약점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이 새로운 엔진을 다루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다.

 

첫째, AI에겐 '영혼'이 없다. 여기서 영혼이란 철학적, 종교적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는 '주관적 경험'을 말한다. AI가 만들어내는 감성적인 시나 가슴 찡한 이미지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그럴듯한' 조합을 찾아낸 결과물이지, 스스로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고 표현한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기존 데이터의 정교한 통계적 투영이라는 사실은 GPT-5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둘째, AI는 결과물의 좋고 나쁨을 스스로 '검증'하지 못한다. 좋은 결과물인지, 나쁜 결과물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전적으로 인간의 가치관, 문화, 윤리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줄이고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개선될 수는 있지만, 특정 결과가 인류에게 궁극적으로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 최종 판단은 그 결과에 대해 윤리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AI는 어마어마한 '전기 먹는 하마'다. 인공신경망(ANN)은 인간의 뇌를 모방했지만, 에뮬레이션은 원본보다 수십, 수백 배의 비용을 필요로 한다. 모델이 정교해질수록 전력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단순히 운영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센터 건설과 막대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물리적 한계와 직결된다. 수백만 년 진화의 산물인 인간 뇌의 경이로운 에너지 효율은, 현재의 기술로는 따라잡기 힘든 거대한 벽이다.

 

 

결국, 다시 인간의 능력에 달렸다

결론적으로 AI 기술은, 적어도 우리가 살아갈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을 대체하는 완전 자율주행차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과 결합하여 인간의 의지를 증폭시키는 강력한 '유인 자동차'인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인간이 운전대를 잡는 것만으로 위에서 언급한 AI의 태생적 약점들은 대부분 보완된다. 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노력의 수준'이다. AI가 내놓는 결과물에 영혼과 의미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인간이 정말 수준 높은 프롬프트를 충분히, 정성껏 넣어주어야 한다. "사과 사진 그려줘" 같은 단편적인 명령은 영혼 없는 결과물만 낳을 뿐이다. 왜 사과 사진이 필요한지, 그 사진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배경에 얼마나 탄탄한 맥락과 의도가 있는지가 결과물의 격을 결정한다.

 

또한, AI가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검수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의 실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잡아내는 인간의 비판적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결국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지렛대를 당겨야 한다. 지렛대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창조하고, 행동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능력들을 AI가 상당 부분 보조하게 되면서, 성공의 무게중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 말하는 능력보다는 질문하는 능력
  • 창조하는 능력보다는 비판하는 능력
  • 행동하는 능력보다는 상상하는 능력

무엇을 만들지 상상하고,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져 방향을 제시하며, 그 결과물이 타당한지 날카롭게 비판하는 능력.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현재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추진력 있고, 언변 좋고, 창의적인 인재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오히려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때로는 허황된 상상을 즐기며, 남이 해놓은 결과물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AI 시대에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받아들이기에 조금 저항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AI라는 새로운 지렛대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 이제 이 지렛대로 무엇을 들어 올릴지 상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힘을 가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