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리고 그 사표를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건, 보통 ‘부업’이라는 달콤한 존재다. 지긋지긋한 본업과 달리, 부업은 왜 그렇게 재밌을까?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성취감, 누구의 간섭도 없는 자유로움, 통장에 찍히는 소소한 추가 수입까지.
그래서 우린 이런 상상을 한다.
"이것만 본업으로 삼으면, 진짜 인생 제대로 풀릴 텐데!"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아이러니한 배신감을 맛본다. 그렇게 재밌던 일이 갑자기 지루해지고, 숨통을 조여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더 나아가, "에라 모르겠다. 모든 일을 부업처럼 즐기며 살자!"라고 선언하며 은퇴라도 하면? 이상하게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이 증발해 버린다.
대체 왜? 이 기묘한 현상의 본질을 파고들다 보니, 해답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본업이라는 지옥, 부업이라는 천국
사실 부업이 즐거운 이유는 단순하다. ‘본업’이라는 명확한 비교 대상, 일종의 지옥이 있기 때문이다. 월요병에 시달리게 하는 그 일이 있기에, 퇴근 후나 주말에 하는 내 부업이 한 줄기 빛이자 탈출구처럼 느껴지는 거다.
본업이 주는 강제성과 지루함이 강력한 ‘대비효과’를 만들어, 부업의 즐거움을 몇 배로 뻥튀기해 준다. 이건 일종의 심리적 조미료다.
조미료가 본 요리가 됐을 때
문제는 그 달콤한 부업이 내 밥줄, 즉 본업이 되면서 시작된다. 순수했던 즐거움의 자리에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돈’이라는 무거운 꼬리표가 붙는다. 좋아서 하던 일은 어느새 고객의 요구에, 마감에, 수입의 압박에 시달리는 노동이 된다.
결국 우리는 또 다른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다. 과거의 본업과 똑같은 족쇄가 되어버린 새로운 본업으로부터.
중심이 무너졌을 때, 모든 게 무너진다
"그럼 그냥 모든 족쇄를 풀어버리면 되잖아?"
"모든 일을 부업처럼 가볍게 대하면 생산성이 폭발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정반대였다. 삶의 중심을 잡아주던 본업이라는 ‘닻’이 사라지자, 다른 모든 부업이라는 조각배들까지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본업은 단순히 돈 버는 행위가 아니었다. 좋든 싫든 내 하루를 지탱하는 ‘뼈대’였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그 최소한의 구조. 그 뼈대가 사라지자, ‘언제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기력으로 바뀌어 버렸다.
삶의 치트키, '폴스 나인'을 기용하라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폴스 나인’ 전술이다.
축구에서 폴스 나인(가짜 9번)은 이름만 최전방 공격수다. 실제로는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는 ‘미끼’ 역할을 한다. 이 선수의 진짜 목표는 자기가 골을 넣는 게 아니다. 다른 동료들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거다.
우리 삶에도 이 폴스 나인이 필요하다. 바로 ‘가짜 본업’이다.
이건 돈을 벌거나 대단한 성과를 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핵심은 ‘적당히 지루하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2시간은 무조건 책상에 앉아 글쓰기
주 3회, 정해진 시간에 헬스장 가서 운동하기
재미없어도 자격증 공부 하루 1시간씩 하기
이런 ‘전략적 지루함’이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폴스 나인이 된다. 이 가짜 본업이 ‘무기력’과 ‘혼란’이라는 상대 수비수를 멱살 잡고 끌고 다니는 동안, 비로소 다른 진짜 즐거운 부업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열린다.
가짜 본업을 해냈다는 최소한의 성취감이, 다른 모든 활동의 추진력이 되어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겐 의무와 족쇄가 필요하다. 다만, 그 족쇄를 남이 채우게 둘 것이냐, 내 생산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내가 채울 것이냐의 차이일 뿐.
자, 이제 당신의 삶에 배치할 폴스 나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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