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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빈민촌과 부촌은 모두 언덕에 있을까? 도시를 오래 걷다 보면 이 문장이 두 장면으로 겹쳐 보인다. 하나는 도심 한가운데 급경사 계단과 이어진 빈민촌의 언덕이고, 다른 하나는 자동차 도로가 구불구불 올라붙는 교외의 고급 주거지다. 같은 언덕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결을 갖게 되었을까. 흔히 시간과 위치의 문제—도시 팽창 과정에서 남은 자리와 새로 기획된 자리—로 설명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답은 언덕 자체의 “입체적 형태”에 있다. 경사, 능선과 골짜기, 햇빛 방향, 바람길과 배수 같은 요소가 접근성과 비용, 위험과 쾌적성을 비대칭으로 나누어 준다. 그 비대칭이 어떤 때는 사람을 밀어내고, 또 어떤 때는 끌어당긴다. 언덕은 평지와 다르게 집과 도시의 논리를 동시에 바꾼다. 경사가 커질수록 도로를 직선으로 낼 수 없고, 계단과 지그재.. 2025. 8. 14.
GPT-5 시대, AI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생각하는 AI'를 표방한 GPT-5가 드디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 모델을 압도하는 성능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제는 정말 인간과 같은 박사급 전문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라는 말도 나온다. 핵폭탄급 변화가 세상을 뒤엎을 거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하지만 한발짝 물러서서 보면, 이번에도 혁명보다는 가속에 가깝다. AI는 여전히 우리가 방향을 제시하면 그쪽으로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주는, 아주 유능한 '엔진'이다. 그리고 이 엔진은 앞으로 더욱 싸고, 더 정확해질 것이다.오히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AI의 본질적인 약점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이 새로운 엔진을 다루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다. 첫째, AI에겐 '영혼'이 없다. 여기서 영혼이란 철학적, 종교적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 .. 2025. 8. 12.
‘이왕 하는 김에’라는 부탁이 유독 부담스러운 이유에 대하여 우리 일상에는 수많은 부탁이 오고 갑니다. 커피 한 잔을 사러 가는 동료에게 “내 것도 한 잔만” 하고 부탁하는 가벼운 일상부터, 조금 더 복잡한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쓰이는 마법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이왕 하는 김에’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말은 참 효율적입니다. 어차피 가는 길, 어차피 하는 일에 작은 수고 하나를 더 얹는 것뿐이니까요. 서로 돕고 사는 세상에서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왕 하는 김에’는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고 관계에 윤활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어떤 ‘이왕 하는 김에’는 고맙고 반갑지만, 어떤 경우는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듯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저 일이 하나 늘어난 것 이상의 불편.. 2025. 8. 11.
평양냉면, '이야기'로 드시나요 '맛'으로 드시나요? "이게 무슨 맛이야?"아마 많은 분들이 평양냉면을 처음 만났을 때 뱉었던 말일 겁니다. 밍밍하고, 심심하고, 심지어는 '걸레 빤 물 같다'는 험한 소리까지 듣는 음식. 그런데 희한합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수저를 내려놓을 때, 다른 누군가는 그릇째 국물을 들이켜며 '캬' 소리를 내뱉습니다. 이토록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어느새 평양냉면은 단순한 국수 한 그릇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담론'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왜 이 슴슴한 국수 한 그릇에 이토록 유난을 떠는 걸까요?수도 서울에서 쓰인 '평양냉면의 정사(正史)'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서울의 오래된 노포(老鋪)들이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 1세대가 수도 서울에 터를 잡고 차려낸 냉면 한 그릇. 그.. 2025. 8. 9.
웹 스크레이핑, 데이터 금맥 캐기인가 디지털 무단침입인가? 웹서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글이나 이미지를 발견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복사-붙여넣기'를 합니다. 아주 간단하고 익숙한 일이죠.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한 쇼핑몰의 상품 만 개의 가격 정보를 전부 엑셀 파일로 정리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혹은, 특정 커뮤니티에 '치킨'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 제목을 천 개쯤 모아야 한다면요?아마 끔찍한 노가다를 떠올리셨을 겁니다. 이때 마법처럼 등장하는 기술이 바로 '웹 스크레이핑(Web Scraping)', 우리에게는 흔히 '크롤링(Crawling)'으로 더 익숙한 기술입니다. 디지털 세계의 탐정, 혹은 도둑웹 스크레이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웹사이트의 특정 정보를 자동으로 추출하여 수집하는 기술'입니다. 사람이 하려면 며칠 밤낮이 걸릴 '복붙' 노가다를, 똑똑한 프.. 2025. 8. 8.
[월간 NEXA 심층기획] 인구 절벽 앞에서, 한국은 프로메테우스가 될 것인가 대치동의 AI 교육 혁명,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위험한 도박취재: 박지성 선임기자 | 사진: 김현우 기자입력: 2025. 12. 01. 09:00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해가 지면 간판들의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아지는 이곳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가장 강렬한 욕망과 가장 깊은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명문대 입학’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이 거대한 시스템의 심장부에서, 지금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조용하지만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그 변화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이끄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혁신가가 아닌, 대한민국 사교육의 상징, 손정희 에듀스터디 교육 의장이다. 우리는 ‘교육’이라는 렌즈를 통해,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 2025. 8. 7.